■ Issue Point
▶ 감독소개 로버트 알트만 1925년 2월 미주리주 캔사스 시티에서 보험 세일즈맨의 아들로 태어난 알트만은 6세가 되던 해에 성 패터스 카톨릭 학교에 들어갔고, 이후 싸구려 녹음기로 된 사운드 실험에 심취해 록 허스트 고교로 옮길 때까지 계속 카톨릭 학교에 다녔다. 고교 졸업 후 렉싱턴의 헨스워스 사관학교에 들어가 초급대학 과정을 마친 알트만은 진로를 바꿔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45년에는 공군으로 입대, B-24기를 몰았고, 2차 대전동안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는데, 남태평양으로 43번 출격했다고 한다. 1947년 캔사스 시티의 메이저 스튜디오인 캘빈 사에 입사해 광고와 다큐멘터리 등 영화제작에 관한 수업을 쌓았다. 캔빈사는 의 시나리오를 함께 작업한 프랭크 배리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였는데, 이곳에서 10년간 광고와 다큐멘터리 등을 찍으며 영화에 관한 기술을 습득했다. 1957년 첫 장편 과 팝 컬처 아이콘에 관한 탐구적 다큐드라마 를 찍은 후 수많은 TV물을 연출했다.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관찰해온 알트만은 , , 등의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쌓은 테크닉으로 반전과 놀아누 에피소드를 짜내는 명수였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제작방식으로 인해 60년대 중반까지 장편영화를 만들 기회를 번번히 놓쳐야 했다. 1970년에 알트만은 기존 쟝르에 도전하며, 변화를 몰고온 그의 주요 작품 중의 첫 영화인 로 세계영화계에 뛰어들어 깐느 영화제가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아메리칸 뉴 시네마 세대가 되었으나 그 역시 뉴 시네마 시대 영화의 아웃사이더로서 70년대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는 , 등에서 영화와 연극을 접목시켜 새로운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를 통해 처음으로 별개의 형식으로 규정되던 만화를 영화로 창조했다. (1971), (1976)은 서부영화, (1973)은 필름 누아르, (1974)은 갱영화, 은 일종의 변형된 뮤지컬, 는 공상과학영화였다. 이런 전 작품의 경력을 통해 알트만은 일관되게 장르영화가 기초하고 있는 미국적 신화의 뿌리를 흔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또한 , , , 등의 희극적 요소가 가미된 영화들에서 다중적 플롯의 파노라마를 고안해 영화에 도입했다. 이 시도는 현실과 가공의 후보를 통합시켜 두개의 정치 유세를 병치시킨 과 유려한 영상 타피스트리로 짜여진 22명의 인물들이 엮어내는, 변두리 군상의 놀라운 모자이크 으로 확장된다. 알트만은 타협을 모르는 그의 성품과 냉소적인 경향 때문에 80년대에 헐리우드의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90년대에 다시 비평적 관심의 전면에 부상한 것도 그런 그의 특징 때문이었다. (1992)와 (1993)은 다층적이고 개방적인 스타일과 사회를 냉소적으로 보는 관점이 수준 이상으로 조화된 작품이었다. 로버트 알트만은 기복이 심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대 미국영화의 뛰어난 이단자이며 또한 관객을 놀라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데 천재인 것만은 사실이다. 2006년 11월 20일 미국 LA의 한 병원에서 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81세.
■ 줄거리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어느 광산촌(워싱턴 주 어디쯤 되려나?), 중국인 포함해서 약 125명쯤거주하는 마을에 존 맥케이브라는 한 사나이가 등장한다. 누군가 그 이름을 듣고 그가 유명한 총잡이 "퍼지(땅딸보, pudge)" 맥케이브가 틀림없다고 주장하고 이 사나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얼마 후 그는 이곳에 클럽(매음굴과 도박장을 겸한)을 하나 개설한다. 시작부터 호황이던 이 클럽의 소문을 듣고 밀러부인이라는 여인이 찾아와 동업을 하게 된다. 악명에 어울리지 않게 포커 말고는 별로 재주가 없는 이 신비스런 인물을 대신해서 밀러부인은 맥케이브의 사업을 아주 번창시킨다. 마을을 지배하기에 이른 맥케이브에게 미국 유수의 광산기업이 접근한다. 마을에 회사 광물창고를 짓고 싶으니 재산을 팔라는 것. 맥케이브는 이 제안을 거부한다."좀 더 가격을 올려 제안하시오!"아주 짧은 협상이 지난 후, 맥케이브는 갑자기 회사가 더이상 그와 거래하지 않으려 한다는것을 알게 된다. 밀러부인은 회사가 맥케이브에게 돈을 주기보다는 총알을 선사하는 편을 선택했음을 직감한다. 바빠진 맥케이브는 원래 제안 받은 금액에라도 계약을 맺고자 하지만 (그 와중에도 1달러라도 더 불러보는 소심함은 여전하다) 마을에는 정체불명의 총잡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맥케이브는 법률가에게 달려가 구원을 청한다. 그러나 법률가는 여유롭다. "당신을 무료로 도와줄께요. 당신처럼 맨손으로 일어선 모범 시민을 그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법정에서 우린 무조건 이겨요. 우리 미국을 일으킨 힘이 바로 정의로운 법률에 있다니까요!!!" 그러니 뭐 사람들 모아서 무슨 일 꾸미지 말고 재판을 통해 해결하도록 해요. 당신이 이번에 굴지의 회사에 대항해서 싸운다면 당신은 미국 사회의 정의로움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워싱턴 포스트지 1면에 실릴 거예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과 저녁 만찬을 히게 될거요" 그러나 정작 마을에서는 총잡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 덮힌 개척마을의 아침, 교회에서는 불이 난다. 모든 사람이 그 불을 끄기 위해 사력을 다 하는 와중에 다른 일에 몰두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총을 들었는데 그들 중 다수는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한 사람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골드러쉬라 불리는, 있지도 않은 금을 찾아 이주한 백인들의 세상에서 몇몇의 총잡이들이 활보한 이 서부개척시대는 멕시코전쟁과 남북전쟁이후로부터 19세기 끝 무렵까지의 한 30년 정도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 서부시대의 진면모는 소수의 총잡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속 모습이 아니라 다수의 가난한 백인 농부들, 또 백인 광부들, 한편으로 또 역시 광부가 되기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중국인들, 그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꾼, 교회, 매음굴, 그리고 이 모두를 점점 몰아내는 정부와 대기업의 다양한 모습속에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낭만의 시대를 선사하는 많은 영웅들... 서부시대의 총잡이들, 중세의 기사들. |
■ 출연 : 줄리 크리스티 (Julie Christie)
〈닥터 지바고〉의 라라 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60년대의 스칼렛 오하라'로 불리기도 했다. 〈닥터 지바고〉와 같은 해에 만들어진 작품 〈달링〉의 주인공 다이아나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영화에서의 열정적 사랑 못지 않게 현실의 삶에서도 워렌 비티와의 뜨거운 연애 사건으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고, 워렌 비티와 연인으로 등장한 〈하늘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를 비롯 〈미친 군중으로부터 격리〉, 프랑소와 트리포의 〈화씨 451도〉 〈샴푸〉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 출연 : 워렌 비티 (Warren Beatty)
워렌 비티는 1937년 3월 30일 미국의 리치몬드에서 태어났다.그는 노스 웨스턴 대학을 다니던 중 학교를 그만두고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여배우 셜리 맥클레인의 남동생이기도 한 그는 어려서부터 극단을 돌아다니며 연기를 배워나간다. 그러다 TV시리즈 로 인기를 모은다. 그의 영화 데뷔는 1961년 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후 그는 1967년 로 주목받는 배우로 떠오르게 된다. 비티는 이 영화의 제작도 맡았는데 이 영화 이후 그는 배우와 제작을 겸행하게 된다. 또한 그는 벅 헨리와 함께 를 공동 연출하면서 감독의 분야에도 도전한다. 그런데 비티의 역량을 잘 발휘한 작품은 무엇보다도 영화 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감독, 제작, 각본, 배우의 일인다역을 소화해낸다. 90년대 들어 비티는 만화를 영화화한 , , 등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다지 큰 성과는 거두어들이지는 못했다. 연기자로서는 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러 여배우들과의 스캔들로도 유명한 비티는 아네트 베닝과 1992년 55세의 나이에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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