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 Point
▶ 마이클 케인 마이클 케인은 어시장 짐꾼과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가지 막노동을 하다가 영국군에 입대하여 독일과 한국에서 복무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레퍼토리 극단들에서 무대감독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의 예명은 '마이클 스코트'였는데, 텔레비전의 한 역할에 캐스팅 제안을 받고 영국 배우노동조합에 가입하려고 보니 거기에 이미 마이클 스코트란 배우가 등록되어 있었다. 케인의 에이전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안에 이름을 생각해내라고 했다. 당시 그는 런던의 시네마 메카 레스터광장에 있었는데, 거기서 케인이 아주 좋아하는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케인 호의 폭동(1954)」이 상영되고 있었고 그리하여 '마이클 케인'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그는 수많은 단역을 연기하다가 「줄루(1964)」를 통해 큰 기회를 잡았다. 여기서 케인은 상류층의 장교 역을 연기하기 위해 런던 토박이 억양을 많이 억제해야 했지만, 그 특유의 억양은 「국제첩보국(1965)」의 침울한 스파이 해리 팔머 역과 「알피(1966)」의 난봉꾼 주인공을 연기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그 역할들은 그를 큰 스타로 키워놓았고 「이탈리안 잡(1969)」과 「겟 카터(1971)」에서 아이콘적인 범죄자 역할들을 맡게 해주었다.
1970년대부터는 다양한 성격 배우로 연기해왔다. 「리타 길들이기(1983)」에서는 학자이자 교육자였고,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 자매들(1986)」에서는 부정한 남편으로 빼어난 연기를 선보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존 어빙 원작의 「사이더 하우스(1999)」의 의사이자 낙태시술자 역할로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는 집사 앨프리드를 연기했다. 2000년에 기사 작위를 받은 케인은 여전히 정신없이 바쁜 촬영스케줄에 따라 살고 있다. 그는 두 번째 아내인 배우이자 모델 샤키라 케인과 1973년부터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나타샤라는 딸이 한 명 있다.다.
■ 줄거리
마이클 케인이 주연을 했다. 마이클 케인은 크리스챤 베일이 주연을 맡은 베트맨 시리즈에서 브루스웨인의 집사 역할을 하는 영국의 유명한 배우.
찰리 크로커(마이클 케인)은 방금 감옥에서 출소를 했는데, 죽은 친구가 남긴 큰 한건을 위해 작업에 들어간다. 중국과 이태리가 무역을 하게 되면서 중국에 공장을 짓는 값인 $140 Million 어치의 금을 이태리에 보내게 된다. 찰리는 이 금을 빼앗는 시도를 하게 된다. 당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 작업은 국제적인 문제로 이슈화 되기 시작한다.
찰리는 작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영국 마피아의 대부 미스터 브리져를 설득한다. 미스터 브리져는 비록 몸은 감옥에 있지만 영국의 모든 마피아를 휘두르고 있고 감옥의 간수들 까지 미스터 브리져의 눈치를 본다.
결국 이 작업은 영국과 이태리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린다. 이태리 최고의 마피아가 경찰과 함께 금괴 수송에 보안을 담당하게 된다. 찰리는 금괴를 훔쳐 스위스 은행까지 운반하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빨강, 파랑, 하얀 3대의 미니 쿠퍼에 금을 나누어 담고 도망가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여기서 2003년 이탈리안 잡과 비슷한 설정이 꽤 많이 나온다. 하수구 속에서 달리고, 강가를 달리고, 계단을 통해 지하도로 내려오는 장면 등등.. 주인공이 찰리 인점 등등 몇가지 설정은 2003년 이탈리안 잡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2003년 버젼에선 솔직히 처음에 나오는 베니스의 장면 빼고는 이태리 하고 별로 관계가 없고 헐리우드를 달리지만, 이 영화는 이태리의 구석 구석을 달린다.
이 영화에는 또한 영국의 유명한 코메디언 베니 힐이 출연한다. 2003년 영화와 달리 설정이 재미있는 부분이 많고마지막 장면은 말로 표현 할수 없이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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