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 Point
▶ 윌리엄 홀든 스물한 살 때 처음으로 출연한 메이저 영화인 권투 드라마 「골든 보이(1939)」는 그의 별명이 되어 계속 그를 따라 다녔다. 홀든은 연기 경력의 상당 부분을 대체로 틀에 박힌 모험물에서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주인공이자 대담한 영웅을 연기하며 보냈다. 「사브리나(1954)」와 「모정(1955)」, 「콰이 강의 다리(1957)」처럼 세월이 흘러도 기억되는 영화가 있는 반면, 몇십 년이 지나는 동안 잊힌 영화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홀든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잘생기고 재치 있는 스크린 상의 존재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그는 명백히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배우였다.
홀든을 제대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또 다른 면모에 더욱 심도 있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의 연기들은, 그가 남성적인 강한 매력 뒤에 감춰진 깊은 슬픔과 불안감과 자기혐오를 드러내는 역할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역할 배후에 자리한 복잡성은 아마도 홀든 본인이 개인적 삶에서 경험한 내적인 혼란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은 그를 상당히 나약하게 만들었으며, 결혼생활을 파괴하는 수차례의 연애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할리우드의 주연 여배우들 일부가 관련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자신의 능력에 관한 회의도 그를 괴롭혔다. 홀든은 미국 남성의 어두운 일면을 자신의 연기 속으로 끌어들였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랬다. 그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연기는 신사답고 낭만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제17 포로수용소(1953)」의 냉소적인 하사관이나 「선셋 대로(1950)」의 악착스러운 기자,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1969)」의 세상사에 지친 무법자 두목 그리고 「네트워크(1976)」의 패배한 뉴스 프로듀서 등의 인물 표현에서 볼 수 있다. 딱하게도 홀든은 1981년에 폭음 중 머리에 당한 부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가 더 살았더라면 그때까지 보여 주지 못한 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 줄거리
코만도 전략은 1968년에 제작된 전쟁 영화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한 실제로 존재했던 '악마여단'이라 불리는 특전대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는데 이 악마여단은 미국 특수부대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앤드류 V 맥리글렌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그는 외에도 등의 많은 전쟁 오락 영화를 흥행시킨 상업영화 전문 감독이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캐나다군과 미군을 일부 차출하여 '제 1 특전단'이란 특수부대가 창설이 된다. 이 부대가 바로 2차 대전 당시 맹위를 떨치던 '악마 여단"이라 불리던 특수 부대이다. 지휘관은 프레드릭 대령으로서 탁월한 통솔력과 작전 능력의 소유자로서 병사들을 최고의 정대 부대원으로 만들어 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감독의 탁월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영화적인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당시 3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