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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ls


비루먹은 말을 봐라

Title Info
◆ 제  : 비루먹은 말을 봐라    
◆ 원  제 : Behold A Pale Horse        
◆ 제  작 : 키노필름
◆ 장 
르 : 액션
◆ 감 
독 : 프레드 진네만
◆ 주 
연 : 오마 샤리프, 앤서니 퀸, 그레고리 펙
◆ 등  급 :
15세이상관람가
◆ 시  간 : 본편 118분
◆ 화 
면 : 1.85 : 1 ANAMORPHIC WIDESCREEN
◆ 음 
향 : EnglishDolby 2.0/EnglishDolby5.1
◆ 자 
막 : 한국어, 영어
◆ 코 
드 : 3
◆ 출  시 : 2017.08.04

 

 

Synopsis

 

Issue Point

▶ 프레드 진네만
1927년 비엔나 대학 법과대학 졸업했지만 에릭 폰 스트로하임의 와 킹 뷔다의 에 영향을 받아 영화에 뜻을 두고 파리의 사진 영화 기술학교(Ecole Technique de Photographie et Cinematographie)의 1기생으로 입학했다. 1년 반 동안 기술을 배운 후 베를린으로 가 1년 동안 촬영조수 생활을 했다.
1928년 빌리 와일더, 오이겐 쉬프탄과 함께 로베르트 시오드마크의 의 작업에 같이 참여했는데,이듬 해 헐리웃으로 건너가 (30)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베르톨트 비어텔의 카메라 조수 겸 편집자로 일하다 유명한 다큐멘타리 감독인 로버트 플래허티에게 소개되어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왔다. 플래허티와는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에 관한 다큐멘타리를 찍으려고 했는데 그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플래허티와의 프로젝트는 무산됐지만 이후 그의 영화의 작품경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감독으로서 최초로 일을 맡은 것은 멕시코 베라크루즈의 어촌을 세미 다큐멘타리 터치로 그린 (35)였다. 그후 진네만은 1937년부터 MGM영화사의 극장용 단편영화를 찍는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38)는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장편 데뷔는 (42)로 했는데 반골기질이 있어, 전속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회사 수뇌부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1953년 를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처음으로 정복한 뒤 , , 등으로 생애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 , , , , 등 많은 걸작을 남긴 그의 연출 패턴은 극히 고전적인 것으로 확실한 것이었다.

 


줄거리

20c초 만해도 왕정이 지배하던 유럽의 후진국 스페인은 국제개방의 흐름속에 1936년 2월 선거를 통해인민전선(공화파)이 정권을 잡자, 폐쇄적이고 민족주의적이고보수적인 기득권층(귀족,자본가,교회,군부..)에서는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 7월에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말하자면 시민이 선택한 정부를 군부가 전복하고자 했던 것인데, 이 마저도 목숨을 건 시민들의 결단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자, 인류가 낳은 가장 비열한 집단인 파시스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원에 나선다.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인 1936∼39년에 일어나서 스페인을 이념적으로 둘로 나누었을 뿐만아니라, 조지 오웰, 앙드레 말로, 헤밍웨이 등 세계의 지성들이 공화파로 모이고, 무솔리니와 히틀러 등 파시스트들이 군부를 지원함으로써 전세계를 지성과 반지성, 진보와 보수, 인도주의와 전체주의로 두조각을 내었던 20세기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전쟁이라 할수있는 스페인내전이 안타깝게도 파시즘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스페인에는 반란군의 프랑코 장군의 독재정치가 무려 1975년말까지 이어졌으며, 내전의 상처는 약 60만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50만명의 공화국 정부군과 민간인들이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영화의 도입부에 망명행렬 중 하나로 마뉴엘 아르티게스의 모습이 잠시 보인다. 그러고도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다. 1964년 미국영화인협회가 그해 베스트5 로 선정했고, 최우수조연상과 아역상을 수상하였다.

혁명당시 공화파의 소수민족주의의 우두머리였던 마뉴엘 아르티게스(Gregory Peck)는 프랑스에서 쓸쓸히 망명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인데, 어느날 파코(Marietto)라는 소년이 스페인으로부터 산을 넘어 프랑스에 있는 마뉴엘을 찾아온다. 파코는 아버지를 죽인 비뇰라스장군(Anthony Quinn)을 죽여달라고 애원을 한다. 아버지가 반란군에 체포되었을때, 심문과정에서 대장 마뉴엘의 거처를 끝까지 발설하지 않으려다 고문으로 죽었으니, 아버지의 복수를 꼭 해달라는 것이었다.한편, 마뉴엘같은 인물은 조국을 위하여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극우파 경찰서장인 비뇰라스는 마뉴엘을 자기 손으로 잡아서 처형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이다. 그는 숙적의 체포를 기원하기 위해 오늘도 성당을 찾는다. 그는 교회에 낸 헌금이 얼마인데 이제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실때도 되지 않았나? 고까지 신께 반문한다.

Special Features

■ 없음
Special Contents

 

■ 출연 : 앤서니 퀸 (Anthony Quinn)

1915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퀸은 두 살 때까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어렸을 때 세탁부로 팔려 온 처녀 마누엘라를 사랑했지만 집안이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프란체스코는 멕시코 혁명 전쟁에 휩쓸려 철길을 따라 대륙을 떠돌았고 돌아와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떠돌았다. 주로 멕시코 이민 노동자들이 일하는 농장을 찾아 다녔던 퀸 일가가 정착한 곳은 동부 로스앤젤레스. 그 곳에서 프란체스코는 후진하는 트럭에 깔려 죽었다. 멕시코 인들은 대로를 건너는 것조차 불법이었던 지독한 인종차별, 조그만 양철지붕 집에 온 식구가 몰려 살았던 가난과 함께 아버지는 앤소니 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존재였다. 퀸은 고아가 된 유색 인종 소년이 흔히 겪는 험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남자와 재혼한 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할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 퀸은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맡았다. 그는 돈 받고 스파링 파트너를 해 주는 권투선수였고 시멘트 공이자 전기 수리공이었으며 구두닦이였다. 고생 때문에 일찍 성숙한 얼굴을 가지게 된 퀸을 거리 소년들과 구분해 주는 점이 있었다면 꿈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고 건축물 스케치 대회에서 일등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퀸이 부정확한 발음을 고치고 오면 조수로 써주겠다고 제의했다. 퀸은 청소를 해 교습비를 벌면서 발음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라이트를 찾아 가는 대신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퀸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사람은 팜므 파탈 이미지로 유명한 여배우 매 웨스트였다. 그녀는 연극 〈깨끗한 침대(The Clean Bed)〉를 제작하면서 스물 한 살의 퀸에게 육십 넘은 노인 역을 맡겼다. 주연은 아니었지만 그는 곧 세실 B. 드밀의 〈평원의 사나이〉에 출연하게 된다. 리얼리티를 목숨처럼 여겼던 드밀은 순수한 샤이엔 족 인디언 배우를 찾고 있었다. 멕시코와 아일랜드, 멕시코 원주민의 피가 고루 섞여 있었던 퀸은 드밀을 찾아가 자신이 샤이엔 족이라고 사기를 쳤다. 그 거짓말은 먹혀 들어갔지만 드밀은 그의 연기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퇴짜 맞을 뻔한 그를 구해 준 사람은 게리 쿠퍼. 쿠퍼는 "착하게 생겼는데 한 번 써 보죠"라는 말로 퀸을 구원했고 그 곳에서 퀸은 배우로서의 경력과 함께 첫번째 아내이자 드밀의 수양 딸인 캐서린 드밀을 한꺼번에 얻었다. 그러나 드밀은 배우로서 그랬던 것처럼 사위로서의 퀸도 끝내 좋아하지 못했다.

할리우드에서 소화하기 힘든 외모 때문에 퀸은 갱스터나 인디언을 연기하며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1947년 〈검은 황금 Black Gold〉에서 간신히 주연을 맡았지만 곧 사회주의자로 의심 받아 할리우드를 떠났다. 그러나 연극 무대에서 보낸 그 시절은 퀸에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 곳에서 그는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주연을 맡았고 이전에 차분하게 익히지 못한 연기 수업을 실전으로 대신했다. 다시 돌아온 할리우드는 전과 달랐다. 그는 〈혁명아 자파타〉와 〈욕망의 랩소디〉로 두 개의 아카데미 남우조연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노틀담의 꼽추〉 역시 중년에 이르러 가능했던 명작들. 이탈리아 감독들도 그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와 검은 피부를 눈여겨 봤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연출한 〈길〉의 차력사 잠파노는 짐승처럼 야비한 겉모습 안에 아직 버리지 못한 인간성을 간직한, 어찌 보면 퀸 자신과도 비슷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퀸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가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이라고 말해 왔다. 영화 속에서 조르바는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세 살 먹은 아들이 죽었을 때도 그랬다고 고백한다. 세 살 먹은 큰아들이 물에 빠져 죽은 경험이 있는 퀸은 "조르바의 춤은 내가 아니면 누구도 출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퀸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는 처녀성에 강박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캐서린 드밀과 결혼한 첫날밤,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퀸은 신부를 두들겨 팼고 "그 날부터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리타 헤이워드와 캐롤 롬바드, 모린 오하라, 잉그리드 버그만 등 할리우드 황금기의 여배우들이 그의 연인이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는 "한 번도 처녀와 자본 적이 없다"고 안타깝게 회상했다. 그는 또 경멸의 대상이 됐던 멕시코 혈통을 지겨워 하면서도 멕시코의 가부장적인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두 번째 아내 욜란다와 이혼할 때, 아들 대니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주 때리고 음담 패설을 늘어 놓았다고 비난했다.

세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정부로부터 열 세 명의 아이를 얻은 그는 "우글거리는 자식들은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81세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딸을 얻은 것이 그에게는 자랑이었다. 젊은 시절 가졌던 미술에 대한 열정을 뒤늦게 되살려 죽기 전에는 매일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입체파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그림은 마치 그 생애처럼 강렬한 색을 품고 있다.


■ 출연 : 그레고리 펙 (Gregory Peck)

1916년 4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라 졸라(La Jolla) 출생. 본명은 엘드레드 그레고리 펙(Eldred Gregory Peck). 샌디에고에서 약제사를 하던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였던 어머니는 그의 나이 5살 때 이혼했고, 그는 할머니의 손에 맡겨져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캘리포니아에 이는 버클리 대학 의예과에 입학했으나 연극에 심취하여 전공을 문학과 연극으로 바꾸었다.

39년 버클리를 졸업한 펙은 뉴욕에로 가서 박람회 안내원 노릇과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라는 연기 학교에 등록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장학생으로 졸업한 그는 카스린 코넬 극단에 들어가 배우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1942년 에밀린 윌리암스의 연극 에 첫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그는 1942년 10월 그레타 라이스와 결혼했다.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그는 헐리웃으로 진출, RKO 스튜디오와 계약하여 로 데뷔했지만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두번째 작품 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히치콕의 ,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고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 서부극 , , , 그리고 세번째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등에 출연했다.1952년 파리를 여행하던 펙은 여기자 베로니크 파사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54년 아내와 이혼했다. 그는 위자료로 7만 달러를 내주고 파리로 돌아가 55년 베로니크 파사니와 재혼하게 된다. 61년작 의 성공에 이어 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영화 인생의 절정에 오른다. 이후 TV 영화 쪽으로 눈을 돌리며, 노배우로서 쇠락의 길을 걷다가 76년 공포영화 으로 다시 재기하였고 의 눈부신 열연으로 극찬받았다. 1967년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고 AFI(미국 영화협회)의 초대 회장, 아카데미 회장도 역임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말까지는 서부 영화 출연, 영화 제작 참여 등을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TV 기자였던 큰 아들 존 펙의 권총 자살로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시기이기도 하다.
1976년 은 그레고리 펙의 재기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듬해 에서 맥아더 장군의 역을 맡아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훤칠한 키, 조각처럼 수려한 용모에 도덕적이며 성실한 이미지를 가졌던 그레고리 펙은 의 사려깊은 사제, 의 기자에서부터 의 에이허브 선장, 속의 나치 전범 멩겔레 (Mengel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 속에서 폭넓은 연기력을 과시한 성공적인 배우였다.

40여년의 연기 생활동안 6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그 중 10여편의 영화를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려놓았던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5회 노미네이트되어 1회 수상했으며 2번의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등 16차례의 각종 상을 수상했다. 또한 미국영화연구소 초대 의장, 미국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협회 회장, 미국 암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정치적으로 리버럴한 입장이었던 그레고리 펙은 베트남전 당시에는 반전시위에 앞장섰고 말년엔 미국 각지를 돌며 자신의 삶에 대한 강연을 주로 했다. 1967년 예술과학협회가 주는 진 허쇼트 인도주의상을, 1969년에는 대통령 자유 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했다.

1942년 결혼한 그레타 라이스와 1955년 이혼한 후 프랑스 여성이며 기자 출신의 베로니크 파사니와 재혼해 여생을 함께했다. 베로니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앤서니와 시실리아는 모두 배우로 활약 중이다.

그레고리 펙은 2003년 6월 1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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