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 Point
▶ 월터 힐 Walter Hill 헐리우드 남성파 영화의 일인자로 그를 제2의 샘 페킨파라고 부른다. 75년 찰스 브론스 주연의 〈스트리트 오브 화이어〉로 데뷔하였다. 뉴욕의 갱들을 다룬 1979년작 〈워리어〉는 아직까지도 그의 최고의 역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후 에디 머피를 스크린에 등장시킨 1982년 〈48시간〉으로 그는 세계적인 흥행감독으로 등장한다.
1942년 1월 10일,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조선소에서 리벳공으로 일했는데, 힐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잠시 건설 현장 등에서 노동자로 지내다가, 미술로 눈을 돌리게 된다. 멕시코에서 그림 공부를 한 뒤, 미시간 주립대학에 입학해 언론학 학위를 받았다. 힐은 친구의 부탁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실릴 영화항목에 관한 기초자료를 조사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미국 역사가 아니라 영화 역사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노만 주이슨 감독의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와 우디 알렌 감독의 〈돈을 갖고 튀어라〉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해, 각본가로 활동하게 되는데, 1972년 두 편의 영화가 그의 각본을 기초로 해 만들어진다. 암울한 범죄 드라마 〈히키 & 보그스〉를 집필했고, 짐 톰슨(Jim Thompson)의 소설을 각색한 〈겟어웨이〉는 샘 페킨파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힐은 긴장감 넘치고 힘있는 각본으로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75년에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을 주연으로 자신이 직접 쓴 각본 〈투쟁의 그늘 Hard Times〉로 정식 감독에 데뷔한다. 다음 영화 "드라이버(The Driver)"에서도 역시 각본과 감독을 맡았는데, 이 작품은 힐 감독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재능을 입증한 작품이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드라이버의 행로를 담은 이영화는 자동차 추격신의 전설이 되었으며, 필름 누아르의 제 2기를 열었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도시 밤거리를 정교하게 촬영했으며, 프랑스 필름 누아르의 거장 장 피에르 멜빌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힐 감독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격찬과 비난이 동시에 쏟아진 세 번째 영화 〈워리어〉였다. 서부극 〈롱 라이더스〉는 서부의 역사를 남북전쟁의 후유증에 따른 계급갈등의 장으로 해석한 수정주의 서부극의 결정판이었다. 또한 이 작품은 선배격인 샘 페킨파의 폭력미학에 버금가는 안무하듯이 황홀하게 화면을 끌고 가는 폭력묘사를 보여줌으로써 액션영화의 대가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다. 다음으로 에디 머피, 닉 놀테 주연의 블록버스터 버디 코미디 〈48시간 48 Hours〉과 MTV 스타일과 서부영화의 문법을 결합한 신상품 〈스트리트 오브 화이어 Street of Fire〉를 연출해 크게 히트한다. 8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힐 감독의 작품들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옛 소련의 KGB로 나오는 〈레드 히트〉에서부터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라스트맨 스탠딩〉에 이르기까지 이렇다할 작품들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힐의 날카로운 시각적 스타일과 강력하고 영리한 각본은 어느 작품을 막론하고 변함없이 빛을 발했고, 2002년 복싱 드라마 "언디스퓨티드(Undisputed)"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 줄거리
케이니(Chaney: 찰스 브론슨 분)는 창고에서 사람을 때려 눕히고 내기 돈을 받는 시합을 목격하게 된다. 돈 한푼없는 건달이지만 싸움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케이니는 곧 스피드(Speed: 제임스 코반 분)에게 접근하여 스트리트 파이터가 된다. 순식간에 그는그 계통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갠덜(Gandil: 마이클 맥과이어 분)의 선수도 때려눕혀 주먹계의 일인자가 되나 돈방석에 앉게된 스피드가 도박으로 돈을 몽땅 날리고 만다. 케이니를 5천불에 산다는 갠덜의 제의까지 수락했다는 스피드의 침통한 어조에 격분한 케이니는 그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데 갠덜이 스카웃해 온 스트리트 파이터와의 결전을 조건으로 스피드가 빚쟁이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지막으로 스피드와의 의리를 위해서 결전의장소에 나타나는 케이니, 힘겨운 한판 승부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 , 등등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뒷골목에서 남자들은 맨주먹 싸움을 벌이고 사람들은 거기에 판돈을 겁니다(UFC의 효시라고 해야 할까요?). 찰스 브론슨은 그 '스트리트 파이터' 중 최강. 그는 돈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지분은 확실히 요구하지만 자기 앞가림 할 정도만 챙기고, 나머지는 주변의 여인네와 친구들에게 나눠줍니다. 찰스 브론슨의 싸움실력에 반한 탐욕스런 스폰서가 거액의 계약금을 약속하지만 그는 냉소하며 표표히 떠납니다. 마치 서부극의 주인공처럼.
|
■ 출연 : 제임스 코번 (James Coburn)
1928년 네브라스카주 로렐에서 태어난 제임스 코번은 로스엔젤레스와 뉴욕에서 연기 수업을 받고 1960년 [외로운 총잡이]라는 서부영화로 영화계에 데뷔를 했다. 일본의 명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에 캐스팅 되어 이름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단검 던지기의 선수인 브르트 역으로 출연을 하면서 당시 명배우들인 스티브 맥퀸, 율 브리너, 찰스 브론슨과 함께 열연을 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이후 [대탈주], [관계의 종말], [빌리 더 키드], [7인의 독수리]등 모두 2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리고 한동한 연기활동이 뜸하다 [시스터 액트 2], [허드슨 호크], [이레이저] 등에 출연하면서 간간히 얼굴을 알려왔다. 그는 1998년 영화 [어플릭션]에 출연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2002년 11월 18일 평소 지병으로 앓고 있던 심장병으로 74세의 나이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출연 : 찰스 브론슨 (Charles Bronson)
본명은 찰스 부친스키(Charles Buchinsky). 펜실베이니아주 어렌펠드에서 리투아니아계 광부의 15남매의 11번째로 태어나 한때 아버지와 함께 생계 때문에 탄광의 광부로 일하면서 상해와 강도로 투옥되는 등 험난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2차 세계대전에 미공군으로 참전 후 필라델피아 극단에서 허드렛일을 했고, 49년 패서디나 플레이하우스에서 연기수업을 받았다. 51년에 데뷔한 뒤 한동안 식당 웨이터 등 조연에 머무르던 그는 53년 에서부터 중요한 배역을 맡기 시작했다. 브론슨이란 이름은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 영화사 입구에 서있는 브론슨 게이트에서 따온 것으로, 54년 당시 최고 인기 배우였던 앨런 래드와 공연한 를 통해 처음 선보였다.
그는 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 , 등을 거쳤고, 를 본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의 초청으로 출연한 영-불 합작영화 (68)가 유럽 전역에서 크게 히트하면서, 이후 그의 인상을 결정짓는 특유의 콧수염을 처음 선보였다. 스스로 “다이너마이트에 부서진 채석장”이라고 표현했던 험악한 얼굴에 전 유럽은 열광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성스런 괴물'(le sacred monstre), 이태리에서는 '추남'(Il Brutto)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등 유럽인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 여기에 남성화장품 모델로 활약하는 등 남성미 넘치는 스타로 부각된 그는 7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로 뽑히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강간살해당한 딸의 복수에 나서는 아버지로 출연한 시리즈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과 과묵하고 거친 남성미로 ‘터프 가이’의 상징이 됐다. 무뚝뚝한 그는 유부녀였던 여배우 질 아일랜드와 사랑에 빠졌을 당시 남편이었던 영국 배우 데이빗 매컬럼을 찾아가 “네 아내와 결혼하겠다”며 짧게 통보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아일랜드와 20여 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으나, 1990년 아내가 유방암으로 사망한 후 77세이던 98년 5월 36세인 3번째 부인 킴을 만나 12월에 결혼했다. 브론슨은 두번의 결혼에서 자녀 넷(하나는 입양)을 두었으며, 킴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그는 2001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회복불능 상태에 접어들자 그의 가족들은 유산을 둘러싸고 암투를 벌였다. 세번째 마지막 부인이었던 킴과 첫째 부인 해리엇, 그리고 자녀들 사이에서 브론슨의 재산(약 600억원)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