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 Point
▶ `재난 영화의 원조'
1936년 힌덴부르크는 대서양을 연간 17회 왕복하였다. 힌덴부르크가 연중 계속하여
대서양 횡단 운항을 한 것은 1936년이 유일하다. 횡단에는 19시간 51분이 소요되었으며 5일 동안 두 차례의 왕복을 한 적도
있었다.
독일의체펠린형 비행선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서 유래하였다. 자매함인 LZ 130 그라프체펠린과 함께 사상
최대의 항공기였으나, 운용 2년차인 1937년 5월 6일, 미국 뉴저지주의 레이크허스트 해군 비행장에 착륙하는 도중에 갑작스런 폭발로 인한
화재로 파괴, 소실되었다.
■ 줄거리
힌덴부르크호의 비극이 벌어진 날인 1937년 5월 6일 힌덴부르크호는 프랑크푸르트로부터
목적지인 미국 뉴저지주의 레이크허스트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지상에 계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거대한 불길이 일어났다. 기체의
대부분인 수소가스가 연소되면서 생긴 불지옥에서 승객의 비명을 들은 목격자도 있었다.
시카고 WLS 라디오의 허브 모리슨 기자가 착륙 모습을 중계하다가 사고를 보고 남긴 방송 녹음과 필름이 전해진다.
"비행선에 불이 붙었습니다. ... 끔찍합니다. ...
세계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 "
이 사고로 97명의 승객 중 36명이 사망했다. 1차 대전에서 공군기로 사용되었던 체펠린 비행선과 마찬가지로 이 힌덴부르크호도 수소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에는 매우 취약한 기종이었다. 사고 당시 이 참사가 정전기의 급작스런 발생으로 흘러나온 가연성 수소가스에 불이
붙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으나, 당시 한창 기치를 올리던 히틀러의 나치에 반대하는 세력이 폭탄을 설치했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여러 가설들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착륙 직전, 바람 때문에 좌우로 급회전을 하는 동안 과부하로 인해 케이블이 끊어져 수소 탱크를
찢어버린다. 이로 인해 탱크에 있던 수소 가스가 새어나간다. 목격자들이 보았던 비행선 위쪽의 물결치는 듯한 표면은 새어나간 수소 가스였다.
당시 흐린 날씨로 인해 비행선은 강한 전하를 띠고 있었다. 착륙을 위해 내린 밧줄을 통해 비행선의 금속 몸체에 있던 전하는 지상으로
흘러나가지만, 전도성이 낮은 비행선 표면의 전하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에 따라 금속 몸체와 표면 사이에 큰 전압 차이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스파크가 발생하여 수소 가스를 점화시킨다.[35] 이 참사로 인하여 비행선에 의한 여객 수송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