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버튼 (출연)
리처드 버튼은 광부의 13남매 중 12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장학금을
타도록 도와준 선생 필립 버튼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예명을 버튼이라 지었다. 1943년 첫 무대에 섰으나, 그 뒤 영국 공군 조종사로 복무해
활동이 지연되었다. 1948년 다시 무대에 섰으며, 〈돌윈 최후의 날 The Last Days of Dolwyn〉로 영화에 처음 출연했다.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연극 작품은 〈The Lady's Not for Burning〉(1949) 이었다.
〈사촌 레이첼 My Cousin Rachel〉(1952)에서 배역을 맡아 할리우드 영화에 처음 출연했다. 1950년대에는 대형 화면을
최초로 사용한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의 The Robe〉(1953)·〈알렉산드로스 대왕 Alexander the Great〉(1956)의
주연 등 역사적 인물을 주로 맡았다. 〈클레오파트라 Cleopatra〉(1963)에 출연하면서 슈퍼스타로 떠올랐으며, 영화 1편당 출연료로
1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최초의 배우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 뒤 〈베켓 Becket〉(1964)·〈이과나의 밤 The Night
of the Iguana〉(1964)·〈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1965)·〈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1966)·〈희극
배우들 The Comedians〉(1967)·〈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1967)·〈에쿠우스
Equus〉(1977) 등에 출연했다.
버튼은 연극에서도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50, 1960년대에는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영국과 미국을 순회 공연했고, 1960년과
1980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뮤지컬 〈카멜롯 Camelot〉에서는 아서 왕 역으로 기억에 남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2번 결혼했다.
■ 로드스타이거 (출연)
1951년에 로 데뷔하였으며 에서 말론 블란도의 형제 역으로 출연,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50년대에 와 같은 영화에서 조연으로서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으며 알 카포네의 전기를 다룬 작품에서 주연을
하게 된다.
1965년 로 1965년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며 로 스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 외에 , 와 같은 작품이 있으며 로버트 알트만의 에는
까메오로 등장했다.
2002년 7월 9일 지병인 폐렴으로 사망했다. |